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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체험촌


우리음악의 멋과 향기, 국악체험촌

우리 음악의 멋과 향기를 느끼고 몸과 마음에 여유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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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의 업적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조화아악을 창제하고 싶다면서 박연에게 다음과 같이 하명하는 글귀가 보인다.

고래로 어떤 제도를 새로 창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임금이 하고자하면 신하가 반대를 하고 신하가 하고자 하면 임금이 듣지를 않는다. 설혹 상하 모두가 하고저 해도 시운이 불리할 때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먼저 확고히 뜻을 정했고 나라에는 일이 없으니 마땅히 진력해서 그것을 이룩하도록 하라]는 내용이 곧 그것이다.

굳이 실록의 말을 서두에 인용하는 뜻은 이같은 세종의 이야기가 박연의 음악적 업적을 시대사적인 시각에서 한층 객관적이고도 타당성있게 조명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단서 이자 시사가 되기 때문이다.세종의 진단처럼 새로운 일을 도모하거나 기존의 제도를 혁파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서로의 뜻이 투합되고 시운이 뒤따라주는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부합되어야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박연의음악적 공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박연이 조선초기의 음악제도를 정비하여 나라음악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일차적으로는 박연의 뛰어난 음악적 자질과 해박한 지식에 말미암은 바가 컸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종의 공감이나 시대적 여건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문치에 뛰어났던 세종은 음율에도 밝았고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역시 남다른 바가 있었다. 한번은 박연이 편경을 제작해서 시연을 했는데 세종은 이칙음이 조금 높다고 지적해 냈다. 박연이 이칙음의 경돌을 살펴보니 돌을 충분히 깎아내지를 않아서 먹줄이 남아 있었다. 먹줄만큼 경돌을 더 깎아내니까 그제야 음정이 정확해졌다. 세종의 음감이 어떠하나를 엿보게 하는 일화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종은 또 다음과 같이 주위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기도 했다. 즉 [(아악(옛날 우리나라의 궁정용 고전 음악)은 본래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고 실은 중국음악이다. 중국 사람이라면 평일에 늘 들어서 익숙하므로 제사에 연주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서는 (향악(우리나라 고유음악을 당악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을 듣는데 죽어서는 아악을 연주하게 되니 이 어찌된 일인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종대왕의 자주적인 예술관,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꿰뚫을 수 있는 단적인 예로서 당시의 사대적 풍조속에서는 여간 투철하고도 파격적인 시대의식이 아닐 수 없다.

박연이 조선조 초기 음악에 많은 공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세종의 각별한 음악적 관심이나 배려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을 것이다. 고기가 물을 만나듯 박연의 음악적 공헌이 빛을 보기까지에는 비단 임금의 지지만이 뒤따랐던 것이 아니다. 시대상황이 들어맞었고, 제반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즉 왕조가 바뀌어 각종 문물제도를 일신해야 할 시대 상황이 그것이었고, 악기제조에 선행돼야할 기본재료인 경석(안산암의 하나로 정으로 치면 맑은 음향이 남)과 거서(기장이라는 곡식 이름)가 각기 남양과 해주에서 산출되었던 시기적절한 여건조성이 곧 그것이었다. 바로 이같은 안성맞춤의 조건속에서 박연은 자신의 음악적 기량과 소신을 펼쳐갈 수 있었으며 역성혁명의 와중에 미비하기 그지없던 개국초기의 음악제도를 힘겹게나마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명한 일이지만 박연의 이름이 후세에 길이 회자되는 것은 개인적 신상명세나 덕행의 남다름에 있지는 않다. 두말할 나위없이 그것은 음악에 끼친 그의 헌신적 공로때문인 것이다. 박연의 상소문과 그의 가훈 등을 엮어서 후손이 간행한 [난계유고]를 살펴보면 그가 음율에 얼마나 정통했으며 근세의 예악사상에 얼마나 투철했는가를 이내 간파할 수 있다. 그가 임금께 주청(임금께 상중하여 청원함)한 음악에 관계된 내용 몇가지를 예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음악의 기본인 황종율관을 제작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여타의 율관을 제작하자고 상주(임금에게 말씀을 아룀)했고, 공식 연례에서 여악(궁중 연회 때 여기가 악기를 타고 노래부르고 춤추는 일)을 사용하는 것은 예의지국에서는 불가한 일이라고 이의 시정을 상소했다. 한편 음악이란 하늘과 땅의 이치를 취하고 음양의 도리를 쫓아서 제작되는 것이기에 그 속에는 오묘한 섭리와 인간이 따라야 할 순리가 내재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음악상황은 여러 가지 악기가 미비하고 법도가 크게 무너져 있었다.

이에 박연은 악율의 법제를 바로잡고 악장의 난삽을 보정하고 악기를 구비하여 고제에 맞는 정악을 확립하도록 상주하기도 했다. 또한 제향악(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악)의 용례와 절차를 고법에 맞게시정하자고 제청했으며, 당상이나 당하에서 연주하는 음악의 법도가 틀렸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즉 옛 법도로 음악은 반드시 대뜰 위의 당상과 대뜰 밑의 당하로 양분해서 연주되기 마련이다. 이는 음양이론에 따른 것인데, 지대가 높은 당상은 양의 위치이고 지대가 낮은 당하는 음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양조화에 부합하려면 양의 위치인 등가, 즉 당상에서는 음에 해당하는 음악을 연주해야하고 음의 위치인 헌가, 즉 당하에서는 양에 해당하는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여기 음의 음악이란 12음의 율려중에서 짝수 번호에 해당하는 음을 의미하고 양의 음악이란 홀수 번호에 해당하는 음이 주음으로 기능하는 음악을 뜻한다. 법도가 이러한데도 조선 초기에는 음악제도가 문란해져서 당상에서도 양율의 음악이 연주되고 당하에서는 음율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으므로 박연은 이를 바로 잡도록 임금께 간곡히 상소했던 것이다.

박연의 상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향악의 음악절차를 시정토록 건의했고,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때의 용악에 대해서 상주했으며, 임금의 좌전때의 음악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런가하면 흙으로 굽던 와경을 석경으로 대체하자고 건의했으며, 훈이나 축이나 생황같은 악기를 고제에 맞게 제작하자고 했고, 제례악(종묘, 문묘의 사대찰에 쓰는 음악)에 곁드려지는 일무(사람을 여러 줄로 벌여 세워서 추게 하는 춤)는 바로 잡자고 했다. 한편 악기의 배치법 즉 악현법을 시정하고자 했고, 악공의 복식을 개수하자고 했고, 가동을 설치하자고 했고, 악가를 마련하고자 했고, 악보를 간행하자고 했다. 그밖에 건고, 대고, 뇌고, 영고 등을 제작하거나 개조하자고 했으며, 편종을 주조하자고 건의하는 등 대소 40항목에 이르는 음악관계의 내용을 임금에게 주청했다.

지금까지 적시한 박연의 상소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박연의 음악세계와 악제의 정비를 위한 그의 집념을 십분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박연은 음악 전반에 걸쳐서 두루 통달하고 있었으며 음악의 고법을 숭상한 나머지 고법에 어긋나는 모든 음악제도를 철저하게 바로 잡으려 했다. 흔히 음과 양이 비견해서 예와 악이라는 뜻의 예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음악은 일찍부터 동방문화권 속에서는 인간과 사회와 정치, 심지어는 우주론적인 지평으로까지 연결되어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성격을 띠기까지 했었다. 음악의 고법이란 바로 이같은 관념적이고도 철학적인 성격이 농후한 음악관과 음악론을 지칭하는데, 박연은 바로 이같은 전통적 음악의 맥에 충실하려 했고, 그같은 음악관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의 음악을 크게 정비하려고 진력했던 것이다.

동양적인 음악관에 따르면 나라가 바뀌면 마땅히 음악도 바뀌어야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치세지음이니 망국지음이니 하는 일상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곧 음악제도의 붕괴를 뜻하기도 했다. 그만큼 음악의 좋고 나쁨과 국가의 흥망은 표리의 함수관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난세지음이 횡행하면 백성들의 심성이 사악해지고 사회기강이 문란해서 결국은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논리였다. 시대적 관념이 이러했기 때문에 왕조가 바뀌면 반드시 음악제도를 바꾸는 것이 상례였다. 수명개제라는 말이 곧 그것이다. 망국의 음악을 새로운 왕조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발상이다. 혁명의 혼돈에서 서서히 사회 분위기가 안정되자 악정에 관심을 기울인 세종의 치적도 이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고 박연의 음악적 공헌도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보다 큰 역사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박연의 음악적 업적 중 실록의 말을 서두에 인용하는 뜻은 이같은 세종의 이야기가 박연의 음악적 업적을 시대사적인 시각에서 한층 객관적이고도 타당성있게 조명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단서 이자 시사가 되기 때문이다. 세종의 진단처럼 새로운 일을 도모하거나 기존의 제도를 혁파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서로의 뜻이 투합되고 시운이 뒤따라주는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부합되어야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박연의 음악적 공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박연이 조선초기의 음악제도를 정비하여 나라음악의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일차적으로는 박연의 뛰어난 음악적 자질과 해박한 지식에 말미암은 바가 컸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종의 공감이나 시대적 여건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살펴볼 때 박연은 조선 초기의 뛰어난 학자이자 음악이론가였다. 성어악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는 학식만 풍부한 무미건조한 선비가 아니었고, 예와 악을 숙지한 풍류적 선비였다고 하겠다. 또한 유어예라는 말처럼 전통적 규범에 언행의 뿌리를 두되, 정신적으로는 늘 이상적 음악의 세계, 즉 절대자유의 우주적 음악관에 안주하며 이의 재현을 추구한 의식있는 관료요 깨어있는 예술행정가며 투철한 음악이론가였다고 하겠다.

특히 우리가 그를 평가할 때 유념해야할 일은 그의 세세한 음악적 업적, 즉 앞서 개략적으로 소개한 상소문의 내용과 같은 실천적 음악정비나 제도의 개선만이 아니라, 그같은 개혁행위나 의도가 지니는 시대사적 의미, 다시 말해서 역성혁명의 건국초기에 넘어야 할 수명개제의 필연성을 비롯해서 황종율관이 지니는 상징성이나 효용성의 문제처럼, 어쩌면 음악외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배면의 시대정신과 세계관을 통찰 해야겠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박연이 남긴 업적이란 실로 나라음악의 기틀을 다졌다는 국소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크게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상징적인 가치로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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